긁적여본 글

나는 누구일까?

iem888 2006. 6. 10. 12:02

 

 

★ 나는 누구일가 ★

또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지?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봤을 것이다. 아니 세월 따라 살아오면서 밤이 내 잠을 받아드리지 않을 때, 어려운 일이 나를 힘들게 할 때, 남들의 비애를 볼 때, 밤하늘의 별을 보며 엄마가 그리울 때, 나 어릴 때 어른이셨던 모든 분들이 이 세상을 떠나 어디엔가 살아계시리라는 내 마음이 허상을 바라볼 때, 진정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 일가? 이렇게 수없이 생각할 때가 있었으니까...

과연 내가 이승을 떠났을 때 내가없는 이세상이 존속할 수 있을까. 무슨 헛소리냐고요? 물론 나도 인정하는 헛소리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나는 다시 스스로 반문하게 된다. 아무려면 어때 나는 지금 살아있으니까. 그래서 생각할 수 있다. 남들은 이승을 떠나면 저승에 극락의 세상이 있고 천당이라는 이상세계가 있어 거기에서 영생을 위해 신앙생활에 헌신 하는데 과연 이 세상을 먼저 떠나신 그분들이 지금 이승에서 생각하고 말하는 극락이나 천당이라는 거기에 계실까?

여기까지 상상이 미쳤을 때 현실적으로 그분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국토 금수강산 산소아래 고이 잠들어 계시면서 자연으로 돌아가고 계신 그분들을 모독하는 것은 아닌지 누구라도 자신의 주검이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확신하면서도 영혼이 있어 극락이나 천당에서 영생한다는 것이다. 영혼의 형체가 있어 내 안전에 나타나 내 시각을 통해서 느낌으로 지각하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물리적으로 공간을 차지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존재한다니 어떻게 존재하느냐고 물으면 보이지 않는 공기가 없다고 할 수 있느냐 는데 할말이 없다.

물론 공기가 없다고 할 수야 없지. 바람불어 여름에 시원하고 가을이면 산들바람 삭풍은 가지 끝에 불고 솔솔바람 하늬바람 바람타고 떠도는 뭉게구름의 환상과 낭만이 철철 넘치는 수많은 시(詩)와 노래의 샘 틀 인데, 이렇게 좋은 바람이 없어서도 안 되고 분명 있어서 있음이다. 그래 보이지 않아도 있을 수 있다. 분명 보이지 않는 공기가 있는 것처럼 영혼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보이지 않는 공기야 있건 없건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왜 이리 그리운지 너무나 보고파 내가 나를 불쌍히 여겨 내가 나를 달래보지만 달래다 한 몸 되어 한없이 울었었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그대. 바람처럼 지나가며 내 맘 한번 스쳐다오. 간절한 이내마음 살아있어 생각함이다. 살아있어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슬퍼하고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가져다주는 환상과 낭만 속에서 내가 살아간다고 확신하고 싶다.

그래서 살아야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진정 이는 진리이다. 죽음은 살아서 할 수 있는 모두의 종착역이고 끝이다. 왜 우리는 이를 유추해석 함인가. 살아서의 생각을 죽어서 까지 욕심에 채우려하는지. 죽음이 끝인 줄 확신하면서도 왜 억지 논리로 합리화 하려는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해가 될 리 없고 그래야 정상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것만이라도 감사히 받아 드려야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안 괴로움과 슬픔 어떤 힘든 일에 고통 받는 이웃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상부상조하면서 사는 것만이 최선일 것이다. 이를 외면하고 자만하며 절망에 처해있는 사람들의 생을 포기로 유도하는 수단과 방법을 제공하는 약품판매의 상행위가 있다니 이는 혼돈이 가져다주는 인간심리를 이용하는 잘 난자(사회악)들의 생활수단이다. 로또복권을 사는 사람들의 심리는 당첨될 수 있는 확률보다 먼저 당첨 될 수 있다는 가정이 이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이 또한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 할 수없는 사행이다.

살아서 잘해라 누구에게 잘한다는 것은 나를 위함이다. 여기서 잘함이란 협조라는 의미며 산울림의 메아리. 거울에서 반사되는 나의 모습. 베풀어서 얻어지는 나의 흐뭇함 이모두가 반사 급부로 나에게 되돌아옴이고 살아있는 우리들의 사명이다.

그리고 죽음은 끝이고 자연에 귀속 될 뿐이다. 그이상의 아무의미도 없다고 하고 싶다.

글/멋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