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적여본 글

★ 살아가는 방법(용기) 생각하기(1) ★

iem888 2006. 8. 26. 10:29
★ 살아가는 방법(용기) 생각하기 ★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를 생가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배웠으며 그 지식을 얼마나 활용했으며 얼마나 도움이 됐나를 회고하고 앞으로 어떤 방법으로 살아야하고 얼마나 열심히 배워야 하나를 필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언제부터는 기억에 남고 그 이전은 기억이 전혀 없다. 네 나이가 몇 살이냐? 하고 누가 물을 때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모아 부치고 두 번째 검지와 가운데 그리고 약지까지 세손가락을 펼친다. 그러면 세살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보다 그 손가락이 너무 귀여워 손을 잡게 된다. 그리고 나의 입술이 뾰족해지면서 반사적으로 아기 볼에 입술도장을 찍어줄 것이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상호 사랑과 신뢰로 이어진다. 이를 교육의 근본이며 시작이라고 본다면 숫자 개념을 떠나서 사랑과 신뢰를 배웠을 것이다. 누구라도 자라나면서 자신의 나이가 몇 살이라는 사실을 부모로부터 전해지며 이를 본인의 기억으로 정해질 수 는 없을 것이다. 내가 기억해낼 수 있는 나 어릴 때를 상식의 유추로 볼 때 세살 때 기억은 천재라면 몰라도 나는 기억에 없다. 그래도 세살 때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어를 생각할 때 나는 둔재임이 맞는 말인 것 같다,(03.8.6)

내가 어렸을 때 그 옛날을 더듬어 기억이 닿는 한계가 5살로 추정되는데 사촌형님이 큰집에서 잠든 나를 우리 집에까지 업어다놓고 노랑색(가운데 구멍이 뚫린) 오전짜리 동전 한 잎 을 주고 간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일전이면 눈깔사탕 2개였으니 열개의 화폐가치라 할 수 있다.(03.8.7) 돈이면 사탕일수 있다는 것은 알았어도 5전의 가치와 몇 개를 살수 있었다는 숫자 개념까지는 몰랐을지도 모른다.

나의 기억이 사실이라면 나는 돈에 관심보다는 사탕을 좋아했고 사탕이 먹고파 사탕을 엄마에게 달라고 하면 일전짜리 동전 몇 잎 을 주고 가게에 가서 사오라 했을 것이다. 3살과 1살 된 동생이 있어 맏인 나에게 심부름을 시켰을 거라 어림잡아본다. 지금의 어린이들은 5살이면 유치원에 입학을 해서 그림도 그리고 글도 배운다. 그 당시는 8살에 국민학교 입학을 해서 글을 배우기 시작했으니 지금보다 3년이나 뒤처진 셈이다.(03.8.8)

문제는 3년이라는 시간의 지체로 그 당시와 지금의 또래의 차이라면 교과과정의 차이라고 볼 때 그 당시는 학교에서 수업시간이 끝나는 즉시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면서 신체적인 단련이 생활의 건강을 축적했을 것이며 풀숲에서 뱀을 잡아본 경험 산딸기 메뚜기잡기 개울에서 고기잡기 매미 등을 잡아 실에 매서 울타리나 나무 가지에 매어놓고 매미의 울음소리도 감상했고 산새를 잡아 길러보면서 생활주변에 모든 것을 체험하는 실습으로 배운 효과가 자라면서 큰 도움이 됐다고 본다.

지금에 자녀들을 둔 부모가 체험으로 무엇인가 교육적인효과를 기대하고 방학 철을 이용해서 현장실습으로 그 효과를 보려하지만 그 적응이 쉽지 않음을 본다. 농경사회에서 자라난 우리들은 자연과 더불어 적응해왔기에 그 어디에서도 자연과 접하면 생존에는 그리 큰 불편은 없으리라고 본다. 식생활 또한 모두가 자연식이었다. 이렇게 자연 속에서 심신을 단련해온 지금의 늙은 세대들이 농촌에서 나이가 80이 되도록 건강하게 일하면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죽을 때까지 건강을 유지한다고 보면 맞는 말일게다.

따라서 지금의 노년세대는 절대 불행한 세대가 아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말이 있다. 그 이상을 모르기에 자연친화적인 아는 방향으로 고수하고 잘살아간다. 지금의 농촌이 옛날만 못하다고 보지 않는다. 지금농촌에서 밥을 굶어 옛날처럼 허리띠를 졸라매고 허기를 참는 사람은 없다. 태어나서부터 자연과 더불어 살아왔고 정년이 없는 노인들은 지금도 건강하게 일하고 있기에 감사해야한다.

문제는 도시노령화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일할 수 있는 능력의 나이로 정년을 맞은 노인 아닌 노인들의 인구가 사회여건상 기하급수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50대에서 정년으로 일을 마감한 인력이 농촌으로 유입되어 일한다는 것은 기피현상도 있겠지만 불가능한일이다. 농사일도 어렸을 때부터 단련된 사람이 아니면 단순노동이라도 힘겨워 불가능하다고 본다. (03.8.9)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의 길목에 선 우리나라는 주변국들의 추종도 관과 할 수없는 난 기로에 서있다. 세계화시대에서 생존경쟁이란 처절하리만큼 치열하다. 여기서 살아 남기위해 우리는 어떤 자세와 어떤 방법이 있 나를 나름대로 하고 푼 말이 있어 말문을 열어본다.

어른들이 항상 공부해라 공부해라로 일관되게 박자도 연주도 엉망이고 단 “공부하라”는 가사만이 맞는 말이고 보니 흥미를 잃게 되고 장단에 마 춰 춤을 추려 해도 도대체 엉거주춤 밖에는 출수가 없어 심지어는 반발심으로 모두가 귀찮아진다. 어린것이 말문도 열리기전에 영어다, 일어다, 중국어. 불어, 독어, 피아노, 바둑, 태권도. 발레. 또 뭐가 있더라. 너무 많아 헤아릴 수도 없다.

경쟁심리가 발동을 해서 누구에게나 손톱만큼이라도 뒤지고 싶지 않아 어느 것 하나 빼놓기 싫어 귀여운 자녀들을 혹사시키고 있다.(03.8.10) 사회 추세가 이러하거늘 이를 따르지 않을 수 없어 남이 하는 대로 춤추는 곳에 가서 같이 춤추고 노래할 때 같이해야한다. 그런데 여기서 남들이 춤추는 곳에 가서 같이 춤추기를 싫어하면 그만두는 용기가 있어야한다. 학교공부는 철저히 하면서 기타 과외는 선택적으로 적성과 소질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배운다는 것은 앞날을 장식하기위한 준비과정이고 필수적이다. 하지만 소질이나 적성에 맞지 않는 교육은 장래희망에 군것질이어서 소화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고등학교 과정에서 소질과 적성을 정해야한다. 무조건적인 인기학과나 일류대학에 입학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고등학교과정까지가 일반적이며 필수적으로 보고 그다움은 소질과 적성을 따라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고등학교까지의 기반교육은 의무적으로 적성에 맞든 아니든 의무적으로 해야하고 그이상은 자율에 마껴야한다.

자신의 소질과 적성이 결정되면 인생은 이미 결정됐다고 봐야한다. 그리고 사랑하라 이제부터는 사랑하는 그대(적성과 소질)를 따라야한다. 그대가 있는 곳이면 산을 넘게 되면 넘어야하고 물을 건너게 되면 따라 건너야한다. 이제부터는 선택의 여지는 없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그대를 만난 것이다. 그대는 일류대학에도 삼류대학에도 일반학원에도 기업체에도 내가살고 있는 주변 그 어디에도 그대는 있다. 오직 그대를 사랑하고 따라야 산다는 신념만이 나의장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

내가 자라던 그 옛날에 숯을 굽는 숯가마 꾼 이라고 있었다. 깊은 산골에서 숯을 구어 주막거리에 지고 와서 팔았다. 그들의 삶이 우리가 보기엔 야생인간으로 본 느낌이다. 글도 물론 못 배웠고. 사는 것도 야생인의 생활이었고 입은 옷이 숯에 물들고 얼굴에 묻어 꼴이 말이 아니었다. 원시인보다도 볼 상은 못했으리라는 짐작이 맞을 것이다. 불과 4.50년 전의 우리생활상의 한구석의 모습이었다. 평강공주의 사랑하는 그대(바보온달)의 생활모습을 그 당시에도 볼 수 있었던 것이다(계속)

글/멋짱(iem888)